학대 피해로 사망한 장애인 유족이 국가·지자체·시설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법원이 피해자가 장애인이라 노동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일실수입’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액을 기각했다. 변호인단과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장애인 차별”이라며 항소심에서 이 부분을 다툴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0년 3월 8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소재 미신고시설 ‘평강타운’에서 거주하던 중증 지적장애인 김경민 씨(가명)가 사망했다. 활동지원사 정 아무개 씨에게 폭행을 당한 후 병원에 입원했지만 끝내 숨졌다.

유족은 지난해 2월, 대한민국과 평택시, 시설원장 김 아무개 씨를 상대로 약 3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김경민 씨의 일실수입(불법행위로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이 장래에 얻을 수 있는 수입의 상실액)과 장애인연금, 기초생활수급비 등으로 1억 원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김경민 씨의 위자료 1억 원, 유족 5명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따른 위자료 각 2천만 원, 장례비와 치료비 265만 원도 함께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6민사부(임기환 부장판사)는 지난 1월 열린 1심 판결에서 김경민 씨의 일실수입 전액을 기각했다. 김 씨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노동능력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김경민 씨가 △지적장애 1급의 장애인이라는 점 △신체장애도 있어 항상 엎드려 생활한 점 △가해자 정 씨가 ‘김경민 씨는 스스로 기어서 방에 들어갔다’고 말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경험칙상 당연히 도시일용노임 상당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일실수입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노동능력이 평가절하돼 교통사고 위자료나 받지 못한 임금이 삭감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비장애인의 노동능력을 기준으로 장애인의 능력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일실수입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장애계는 이 같은 판단이 장애인 차별이라고 꾸준히 문제제기해 왔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 심지어 이번 판결에서는 김 씨가 지적·신체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일실수입이 단 1원도 인정되지 않았다.

김남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는 이례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비장애인의 50%라도 일실수입을 인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번 재판부는 김경민 씨가 살면서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김 씨의 노동능력을) 부정해 버렸다”며 “이런 판결이 굳어지면 앞으로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판결이 더 많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툴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법원이 “장애인의 삶 자체를 부정했다”고 성토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번에 일실수입 전액을 삭감한 것은 매우 심각한 판결”이라면서 “일실수입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노동권을 보장받았을 경우 벌여들였을 최소한의 수입으로 계산한다. 평등권을 실현해야 하는 법원이 (장애인은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편견에 기반한 불평등한 판결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법원은 피해를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하는 곳인데 줄곧 피해자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하는 판단을 해 왔다. 인간의 기본권, 피해구제의 기본적 절차에서 장애인을 배제하고 권리를 박탈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변호인단은 9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에서는 일실수입뿐만 아니라 국가 책임이 전혀 인정되지 않은 부분과 평택시 책임이 제한적으로 인정된 부분에 대해 다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