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장애인당(當)의 대통령 선거 경선후보 9명. 아무도 양복을 입지 않는다. 후드티를 입고 중절모를 쓴다. 경호원도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과 함께 다닌다. 지지자에게 손 흔들어주고 웃어주는 거리유세도 하지 않는다. 장애인 권리 보장을 외치며 시위를 한다. 그래서 경찰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되레 강경하게 진압당한다. 장애인거주시설에 가서 후원물품을 나눠주는 ‘따뜻한’ 모습도 연출하지 않는다. “모든 장애인을 데리고 시설 밖으로 나오겠다”고 말한다.

경선후보 9명 중 6명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다. 나머지 셋 중 1명은 전맹의 시각장애인, 다른 1명은 2살 때부터 시설에서 살다가 탈시설한 25살의 발달장애인이다. 나머지 1명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양육하는 보호자다.

이들 중 최종 대선후보 1명을 결정 짓기 위한 당내 경선이 시작됐다. 경선 기간, 12개 장애인 정책 요구안을 시민에게 홍보하는 ‘거리 선전전’이 진행된다. 탈시설장애인당은 5일 오후 2시,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첫 번째 선전전을 열었다.

통계에 잡히는 지지율은 0%이지만 20년 싸워온 투쟁력은 100%. 비장애 중심 세상을 뒤집고 ‘시설사회’를 부수는 2022 대선 정치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시설 밖 자유로운 삶,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등 공약 발표

탈시설장애인당은 지난해 11월, 9명의 대선 경선후보를 발표했다. 정당법에 따라 등록하지 않은 ‘가짜’ 정당이기에 대선후보 9명도 ‘가짜’ 후보다. 이들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인 권리를 되찾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11월 22일부터 닷새간 전국 선거유세를 마친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등 ‘진짜’ 후보에게 12개 장애인 정책 요구안 수용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당내 경선 기간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에 광화문역 1-1칸 승강장에서 직접 시민을 만나며 장애인 정책 요구안을 알린다. 광화문역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기준, 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요구하며 1842일간 농성했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김필순 탈시설장애인당 선거본부 총괄본부장은 이런 의미를 담아 2월 9일까지 약 한 달간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거리 선전전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첫 번째 선전전에는 이진우 후보, 유진화 후보, 서기현 후보가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마한 이진우 후보는 “내가 살았던 시설에 폭력은 없었다. 하지만 시설은 시설이다.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기징역처럼 시설에 갇혀 있어야 한다. 누구나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 장애인은 무조건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는 인식을 바꿔내겠다”고 약속했다.

유진화 후보는 탈시설한 지 2년 된 발달장애인이다. 유 후보가 발언을 시작하자, 그를 지지하기 위해 참석한 발달장애인 동료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유 후보는 “시설 밖에서 살아보니 너무 좋다. 모든 발달장애인이 나처럼 시설에서 나오게 하려고 출마했다. 대통령이 되면 기획재정부와 달리 탈시설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 또한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 누구나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버는 평범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많은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서기현 후보는 ‘엉터리 종합조사표 그만!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로 나아가자!’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출마했다. 서 후보는 “광화문역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5년간 농성했던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장애등급제 폐지 약속을 받아냈지만 문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엉터리 종합조사표 때문에 활동지원 시간이 외려 줄어드는 일이 벌어졌다”며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를 약속했다.

지지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바람 활동가는 “진짜 대선후보가 이야기하지 않는 평등과 인간존엄을 탈시설장애인당은 이야기한다. 이거야말로 진짜 정치다.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말했다.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활동가는 “탈시설장애인당이야 말로 코로나19 시대의 백신 같은 존재다. 방역당국은 ‘흩어지면 산다’고 한다. 그러려면 시설에 사는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와야 한다. 탈시설에 관심 없는 정당들을 탈시설장애인당이 탈탈 털어달라”며 지지발언을 했다.

최종 대선후보는 오는 2월 14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활동 점수, 당원과 시민의 투표 등 점수를 합산해 대선후보 1명이 선정된다. 자세한 내용은 탈시설장애인당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