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장애인거주시설 6곳 중 3곳에서 거주인 인권침해와 시설 비리가 발생했다. 그러나 단 한 곳도 폐쇄되지 않았고 법인도 해산되지 않았다. 그 배경엔 경주시의 솜방망이 처벌과 봐주기 행정이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3월 장애계는 ‘경주시의 범죄시설 봐주기 행정’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나온 감사결과는 절망적이었다. 감사원은 “경주시 행정에 위법·부당한 조치는 없었다”며 어떠한 문제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420장애인차별철폐경주공동투쟁단(아래 420경주공투단)은 14일 경주시청 앞에서 감사원 공익감사 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역설적으로 경주시가 법과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만큼만 소극적·방어적으로 행정을 펼쳐왔음을 드러내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 경주시 거주시설 절반이 ‘범죄시설’, 그 뒷배는 경주시 봐주기 행정

2008년 경주푸른마을에서는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한 거주인이 약물 남용 등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경주에 있는 선인재활원, 혜강행복한집에서도 인권유린과 비위행위, 공익신고자 탄압 등의 문제가 현재까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인권유린 양상은 매우 유사하다. 학대 주도자는 모두 설립자 일가 운영진이며, 이들은 거주인에게 지원되어야 할 보조금과 입소보증금을 착복하고 횡령했다.

공익제보자와 피해자 가족에 의해 시설 문제가 알려진 ‘선인재활원’(사회복지법인 상록수재단)에선 △설립자가 입소보증금 착복(2016년) △거주인 방임 및 거주인 노동착취(2017년) △공익제보자 부당해고 후 복직시키지 않는 형태로 탄압(2017년)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시설은 어떠한 사법처분도 받지 않았으며, 경주시 또한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 시설엔 2014년에 경북도청 복지과 퇴직공무원이 시설장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경주푸른마을’(사회복지법인 민재)은 피해자 가족의 제보로 사건이 외부에 알려졌다. 이곳에선 △설립자가 거주인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및 약물남용하여 사망(2008년, 2018년) △방임으로 거주인 사망 △거주인 대상 다단계 범죄(2018년) 등이 일어났다.

그러나 2008년 사망사건은 불기소 처분되었으며, 2018년 다단계 사건에 대해서는 설립자에겐 업무상 횡령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법인에는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다.

반면, 경주시의 처분은 관대했다. 2008년 사망사건에 대해 어떠한 행정조치도 하지 않은 결과, 그로 인해 2018년 동일한 일이 발생하여 또 한 명의 거주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2020년 경주푸른마을에도 경북도청 복지과 퇴직공무원이 시설장으로 채용되면서 거주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혜강행복한집’(사회복지법인 혜강)은 공익제보자에 의해 사건이 드러났다. 혜강행복한집에서는 △시설장(설립자 일가)의 거주인 폭행 및 정신병원 강제입원(2016년, 2020년) △보조금 및 후원금 횡령(2018년) △공익제보자 탄압 등이 벌어졌다.

법원 판결 결과, 설립자의 아들이자 폭행 가해자인 전 원장에겐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되었으며, 전 원장의 아내이자 사무국장에겐 700만 원의 벌금이 떨어졌다. 공익제보자는 설립자의 부당한 지시를 행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이러한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여기서도 경주시는 전 원장이 폭행 사건으로 사퇴했음에도 그의 장인을 대표이사로 승인할 뿐,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는 일절 없었다. 현재 설립자 측근들로 이사회는 재편되었다고 한다.

- 경북도 복지과 퇴직공무원이 범죄시설 원장으로… 유착관계 의심

장애인거주시설은 모두 국가와 지자체 혈세로 운영된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자체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함에도 이제까지 경주시는 ‘사법처분 결과에 따라 조치한다’는 미온적 태도로 사태를 방치해왔다.

지속된 문제제기에도 경주시가 꿈쩍하지 않자 장애계는 지난해 12월 거리서명으로 시민 1901명의 서명을 모아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위법·부당한 조치는 없었다’며 사실상 경주시의 처분이 아무 문제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혜강행복한집 사회복지사인 권혜경 공공운수노조 경북지부 부지부장은 “사회복지사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학대 신고의무자이다. 신고의무자로 역할을 다했는데 돌아온 것은 해고다. 공익제보자 세 명 모두 해고됐다”면서 “그런데 감사원은 조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고 규탄했다.

권 부지부장은 “최근 시설 담당 공무원이 새로 부임한 원장의 면전 앞에서 ‘당신은 허수아비 원장 아니냐’는 말을 했다. 우리가 모르는 진짜 원장이 있는 건가. 담당 공무원이 알고 있는 그 진짜 원장은 대체 누구인가”라고 외쳤다.

이어 “경주시가 살려줄 사람은 범죄자가 아니라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다. 경주시는 범죄시설에 대해 왜 이토록 관대한가”라면서 “노조에는 경북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수많은 제보가 들어온다. 그 중엔 지자체와 시설장과의 유착관계에 관한 내용도 있다”고 알렸다. 범죄가 일어난 선인재활원과 경주푸른마을에 경북도 복지과 퇴직공무원들이 시설장으로 채용된 것과 관련해 유착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이번 결과에 420경주공투단은 “소극적 행정으로 인해 경주시 범죄시설 문제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격리수용의 공간인 장애인시설, 그 자체가 제도적 학대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지역사회 내 존엄한 삶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없는 행정의 무능, 무의지가 진짜 문제”라면서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범죄시설 폐쇄를 다시 한번 강하게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