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이름은 오늘부터 두 개야?”
여보, ‘모세’ 어때? 기적의 성인! 이 세례명이면…. ‘혹시, 알아? ‘모세‘ 성인이 우리 아들의 수호천사가 돼서 장애가 사라지는 기적을 만들어주실지?’ 당신 생각은 어때?
아직도 내 맘 한편에서는 아들의 복지 카드 발급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사투 중이었다.
성당에서 연락이 왔다. 단독 세례식을 열어 주신단다. 예준이에게 새 옷도 사입히고, 기적의 성인 ‘모세’ 세례명을 마음에 품고, 성당 주임 신부님과 고해성사실(고해소)에서 마주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부님께서는 내게 아들의 세례명을 정한 이유를 듣자마자, ‘자매님, 그 마음도 비우시고 하늘에 봉헌하셔야 합니다. 예준이의 세례명은 말씀의 사도 ‘사도 요한’으로 하심이 좋을 듯해요.’라며 내 계획에 없던 세례 작명을 즉석에서 해주시는 게 아닌가.
‘어머니, 세상에 별들이 빛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두운 밤도 필요하듯, 많은 이들이 예준이 행보를 통해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이의 역할을 이 아이가 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이유도 붙이셨다.
‘아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란 말인가? 엄마인 나는, 내 아들도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길 누구보다 바라거늘…. 내 아들이 어두운 밤(?)의 역할을 하라니? 그리고 말씀 전하는 아이(?) 이게 다 무슨 말씀이시지?’
‘결혼해본 적 없고 자식을 낳아본 적 없는 신부님이니까, 엄마인 내가 세례명 의미 하나에도 얼마나 간절한지 알 턱이 없으신게지’
‘아니, 내 아들 세례명도 내 맘대로 못하나?’ 순간 속이 터지고 화가 나서 고해성사 하다말고, 세례식이고 뭐고 신부님께 버럭 소리 지르고 따지듯 문을 열고 싶었지만….
현실의 나는 말대꾸는커녕 마지막 희망의 로또 종이를 잃은 듯한 맥없는 목소리로 ‘아멘’이라 답하는 게 아닌가? 후회해도 이미 늦어버린 내 입술은 불만의 크기만큼 실룩거린 채 고해소를 나서고 있었다. 무심하게도 시작 성가가 울려 퍼지며 단독 세례식이 시작됐다.
예준이의 이마에 성수가 부어지고 성유가 발라졌다. 아이는 그 순간 신기할 정도로 무척이나 얌전하고 고요했다. 마치 모든 걸 받아들이는 천사 같았다.
예준이는 만 두 살 무렵부터 손에 무언가 쥐여주면 끊임없이 흔들어야 안정을 취하는 상동 행동이 심했다. 소리에 민감해 작은 소리에도 귀를 막았고, 피부에 닿는 감각도 예민해 신발도 늘 신던 것만 고집할 만큼, 감각 불균형이 유난스러운 아이였다. 일요일을 인지하는 방법 또한 특별한 감각 덕분에 감각통합 치료사를 일주일에 여섯 번은 만나야 다음 날이 비로소 일요일임을 인지하곤 했다. 이 무렵 나는 새벽까지 치료학 논문들을 찾아가며 아들의 치료방법을 찾아 공부를 시작했고, 갑상선 항진증이라는 진단도 함께 받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세상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든 것들을 하루에 몇 시간이고 눈을 흘기며 바라보고 제 자리에서 몸을 70여 바퀴 회전해야 마음이 편안했던 아이!
이렇다 보니, 길거리에 지나는 이발소 사인볼이며 터널의 불빛들, 에어컨 실외기 앞은 우리 아들이 찾는 주요 단골 맛집 장소였다.
그전에는 몰랐다. 골목길을 하나를 지날 때, 에어컨 실외기와 이발소 사인볼이 이렇게나 많은지…. 왜, 내 눈에만 많이 보이는 건지…. 나는 길을 가다 예준이 감각 세상에만 보이는 자동차 바퀴, 자전거 바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든 것들에 짱돌이라도 있으면 던져서 다 멈추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준이가 5살이 될 때까지 아기 띠에 업고 그 지뢰밭 같은 자리를 피하고자 전력질 주로 나는 뛰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 머리는 운동선수 같은 짧은 쇼트커트 장착! 쫄바지, 운동화의 교복화! 화장 생략! 마치 특전사 요원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20킬로는 거뜬히 업고 뛸 수 있는 강력하고 날렵한 몸! 빠르고 간결한 식사 능력도 가능! 그야말로 군인보다 더 정신력이 강한 특전사 엄마 요원쯤 되어있었다. 내 아들은 우리나라 유명 헬스트레이너 ‘양치승’, ‘숀리’보다 더 특별한 나만의 1:1 트레이너였기에 내가 40대가 끝날 무렵까지 다이어트 고민 따위 없도록 나를 바삐 움직이게 했다.
양예준 사도 요한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라고 아들의 이름이 성당 가득히 호명될 때 나는 언제 세례명에 불만이 있었냐는 듯 가슴 벅차게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성가정을 이루었다.
내 아들이 하늘의 아들로 새롭게 태어난 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 부부는 200여 명의 발달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 나눌 떡과 바나나를 상자로 준비해갔다. 아들 첫 돌잔치를 했을 때도 분명 이보다 화려했고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지만, 그때와 또 다른 가슴 벅찬 행복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 분명 처음 만난 수많은 발달장애인이 이미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가까운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걸까? 나는 감사한 마음의 크기만큼 먼저 다가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먼저 포옹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예준이 주변 두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나는 아들을 돌보기에도 바빴기에 신앙을 누군가에게 권유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무교를 고집하시던 시어머님의 세례를 위한 교리반입문 소식이 들렸고, 20년간 뇌졸중의 후유증과 힘겨운 사투 끝에 시아버지께서 스스로 세례를 청하셨다. 아버님은 세례식 다음 날 편안한 모습으로 하늘 품에 오르셨다. 그야말로 예준이 세례명을 통한 첫 번째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기적의 순간이었다.
예준이의 세례식과 뒤풀이가 끝나갈 무렵, 초등 6학년 발달장애아들을 키우는 한 자매님이 예준이에게 세례 축하선물을 건네셨다.
‘사도 요한, 예준이 엄마, 이거, 우리 아들 그림 들어간 스케치북이에요. 예준아 이거 받아~’
‘어머, 너무 멋지네요. 아드님 그림 실력 너무 대단하네요!’ 신기하게도 예준이는 6학년 형이 그린 물고기 표지 그림을 한참을 매만지며 들여다보았다.
‘말도 마요. 우리 아들 이거, 몇 달을 그리라고 하니 마지못해 강사 선생님이랑 실랑이하다 겨우 완성해 그린 거요, 그 선생님이 기념하라고 만들어주신 건데…. 사실 우리 아들은 다시는 안 한다네요’, ‘어머, 얘 좀 봐 관심 있게 그림 보는 거 같네, 혹시 알아요? 예준이가 이제 6살인데 이담에 우리 베드로보다 더 잘할지?.’
무심코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예준이의 눈을 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 사도 요한, 축하해! 오늘부터 이름이 두 개가 됐네. 이 물고기 그림 저기 보이는 베드로 형 그림 이래, 마음에 들어? 너도 멋진 그림 그릴 수 있어. 너는 네 마음을 그리면 돼~’
어쩌면 그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이 말이 하늘의 말씀이 되고, 씨앗이 되어 예준이의 운명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