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을 깨운 부고

1월의 어느 새벽, 적막함을 깨고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장애인자립주택 입주자 이민수(가명) 님을 담당하는 지원자의 전화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온다는 것은 안 좋은 소식일 터, 역시나 병원으로부터 ‘이민수 님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이민수 님은 한 달 전부터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던 중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30분 후, 병원 가는 길에 다시 전화가 왔다. 담당자는 “민수 님이 돌아가셨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최대한 침착해져 본다. 민수 님과의 이별을 슬퍼할 겨를 없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고(형제)가 있는 민수 님의 가족을 응대하고, 장례를 잘 치러야 한다는 책임이 있었다. 생전에 가족을 그리워했던 민수 님을 생각하면, 가시는 길은 가족들의 배웅을 받도록 하는 것이 지원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가족분들이 도착했다. 우리는 2일장을 제안했다. 가족은 일전에 장례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언질이 있었기에 삼일장은 언감생심이었다. 자립생활센터가 장례를 주관하고 장례비용은 고인의 재산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민수 님은 시설에서 30여 년을 살다가 2018년도에 탈시설하여 장애인자립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민수 님은 생전에 돈을 안 쓰시기로 유명했다. 우리는 민수 님께 “모은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드시고, 좋은 옷도 사 입으시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안 들으셨다. 꼭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하는 돈도 여러 차례의 담당자 설득과 본인의 숙고 끝에 꺼내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안 쓰고 모았던 돈이 당신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라도 제대로 사용되길 바랐다.

- 가장 보통의 애도가 ‘비상식적인 행위’가 되는 순간

빈소를 마련하고 나니 각종 선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장례식장 원무과 직원의 설명을 들었다. 장례식장의 크기와 관의 종류, 제사 횟수, 영정사진, 꽃장식, 제단 음식 종류, 조문객 식사 등 선택에 따라 금액은 달라진다. 장례절차는 가족의 선택으로 가장 저렴하고 가장 간소하게, 가장 적은 수로 결정되었다. 그마저도 식사 등 추가되는 비용으로 인해 가족들이 장례식에 대한 불만을 갖게 되거나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눈치를 줄까 싶어, 최초 견적 비용에서 추가되는 비용은 센터에서 받게 될 조의금*) 등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는 민수 님의 부고를 지역에 알리고 추모식을 준비했다. 갑작스러운 장례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수 님을 알지 못해도 탈시설 동료라는 연대의식으로 추모식장에 사람들이 모였고, 장례비용을 십시일반으로 보내주었다. 다행히 추모식은 차질없이 진행되었으나, 가장 작은 장례식장을 대관했기에 조문객은 비좁은 장례식장 내부에 쭈그려 앉거나 복도에 선 채로 추모식에 참여해야 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계산을 위해 원무과에 방문했다. 총비용을 들은 가족은 ‘본인이 알아보니 더 저렴하게도 가능했는데 장례비용이 많이 들었다’며 핀잔 섞인 불만을 이야기했다.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민수 님의 카드로 장례비용을 결제하려는 찰나, 원무과 직원이 “사망진단서가 발급된 고인의 계좌 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당황한 것도 잠시, 민수 님의 재산은 당연히 가족에게 상속될 테니 가족이 먼저 결제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았던 가족은 우리에게 눈치를 주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센터가 쓸 수 있는 돈은 그만큼 없는데, 일단 개인카드로 결제하고 나서 나중에 가족들에게 받아야 하나… 가족들이 주기는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되려 고인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외제차를 타고, 겉치장만 보더라도 경제적 여유가 느껴지는 가족들이 장례식장에 와있는데, 당신의 장례식에 300만 원도 미리 못쓰겠다는 가족들에게 그 재산을 고스란히 바치려고 그렇게 안 먹고 안 쓰셨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우리가 버티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하겠다며 원무과를 나갔다. 얼마 후, 가족 중 1명이 결제하겠다며 원무과 직원에게 장례비를 할인해달라고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원무과 직원도 기가 찼던 걸까. 그는 우리를 거드는 듯 ‘사회복지사들의 덕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적당히 하시라’는 의미의 말로 뾰족함을 드러냈고, 이에 가족은 “덕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지요”라며 대답했다. 가족의 그 묘한 뉘앙스의 대답이 내겐 마치 장례를 통해서 센터가 어떤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처럼 해석되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왜 그렇게 우리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불편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앞장서서 고인의 장례를 치르고 부족한 비용을 부담하고 밤새 빈소를 지키고, 더 잘해주지 못해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 모든 과정이 가족들의 상식에서는 ‘뭔가 얻는 게 있지 않으면 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뭔가’란 센터가 이 장례를 통해 이익을 취한다던가, 직원들이 각종 수당이라도 받을 것이라는 의심이다. 탈시설 장애인의 장례를 지원한 우리는 그들의 시선에서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하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생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아야 한다는 그 보편적인 권리에 기반한 활동이 그 누군가가 보기에는 비상식적이었다.

화장터에서 우리는 고인의 통장, 카드 등 물품을 가족에게 인계하였다. 그렇게 민수 님이 평생 모은 몇천만 원의 재산은 가족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고인은 생전 타보지 못했을 가족의 고급 외제차를 유골이 되어서야 탄 채, 납골당으로 향했다.

장례 다음날, 고인의 사진 한 장 챙겨가지 않은 가족은 구매한 지 1년이 안 된 TV만 고인의 방에서 떼어갔다.

- 세상의 무관심과 반대 속에서 치른 장례투쟁

우리는 최근 지역에서 탈시설 자립생활한 장애인 당사자의 장례를 몇 차례 경험했다.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 센터가 장례주관자가 되어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해 장제급여 80만 원만 받을 수 있고, 연고가 있는 경우 약속된 장례식을 가족이 엎고 재산만 챙겨가기도 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기결정과 선택을 통제받으며 사회에서 분리되어 시설에 갇혀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장례를 통해 세상에 그 삶이 알려지는 것을 부정당하고, 본인의 재산임에도 원하는 방식대로 장례에 쓰이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그래서 우리는 기어코 장례식을 치렀다. 아니, 장례투쟁을 치렀다. 세상의 무관심과 반대를 무릅쓰고 말이다. 고인의 죽음, 가족, 장례비용, 장례제도 순간순간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장애인 이민수 님도 소중한 목숨이고,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고, 많은 동료들이 고인을 위로하고 명복을 빌어줄 수 있었으니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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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의금 중 일부는 장례를 치르는 데 사용하고, 남은 잔액은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