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에스컬레이터 휠체어 장애인 추락사”에 대해 보도하는 KBS 뉴스 영상 캡처. 사고가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출입금지 테이프로 입구가 막혀 있다. 이곳에는 휠체어 등의 진입을 막는
차단봉이 없었다.
- 내가 엘리베이터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더 선호하는 이유
최근 들어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지난 7일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숨졌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모든 기사는 한결같이 해당 역에 엘리베이터 설치 여부를 살피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왜 굳이 에스컬레이터를 탔을까’라는 내용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기사에는 각종 악플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달렸고, 고인이 된 개인의 무지를 탓하며 고인을 ‘상식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나는 기사를 읽으면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엘리베이터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고, 공간은
어느 정도이며, 당시 혼잡도는 어떠했을까.
비휠체어 사용자들에게 휠체어 사용자의 에스컬레이터 탑승은 상식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겠지만,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니는 휠체어 사용자에게는 제법 있을 법한 일이다. 나 역시
수동휠체어는 물론이고 전동휠체어를 탄 후에도 종종 에스컬레이터를 탔던 적이 수두룩하다.
당시에는 엘리베이터가 미설치된 역사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다. 혹은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났거나, 리프트조차 설치 안 된 역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고도의 운전 실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공익근무요원이 뒤에서 약간 받쳐 주면 쉽게 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한 번은 리프트가 고장 나서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전동휠체어 바퀴가
옆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크게 사고가 날 뻔했다. 이 경험만 아니라면 나는 개인적으로
엘리베이터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더 선호했을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아마도
“안전한 엘리베이터보다 위험천만한 에스컬레이터를 어떻게 더 선호할 수 있지?”라며
기겁할 것이다. 이러한 선택을 하는 나 또한 ‘상식적이지 않은 장애인’이라고 여겨지게 될까?
- 엘리베이터 설치율만 따지는 비장애인들만의 이동권
비장애중심주의 사회는 장애인에 관한 문제를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빠르게 판단하고
해석해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이번 사건도 엘리베이터 설치 여부만 집중 보도하면서 고인이
된 당사자의 판단 실수로 방향이 흘러갔다. 나는 이 점에서 매우 화가 났다.
지난 11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시에 에스컬레이터 추락사에 대한 서울시의 사과를
촉구했다.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스쿠터 앞에 ‘양천향교역 에스컬레이터 휠체어
추락 참사, 서울시는 사과하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적힌 피켓을 걸었다. 사진 하민지
그리고 언론에서 보도된 고인이 탔던 보장구는 전동휠체어가 아닌 전동스쿠터다.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는 운전 방식도 다르고 부피도 다르다. 장애인 당사자가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중 국가로부터 무엇을 지원받느냐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다.
이것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애인 보장구 보험급여 기준’에서 상지(상체) 기능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데, 전동휠체어를 받고 싶어도 근력 검사에서 전동스쿠터가 더 적합하다고 판명 나면
전동스쿠터를 지원받게 된다. 전동스쿠터는 전동휠체어에 비해 구매 가격도 훨씬 저렴한
편이라 주로 노인 분들이 많이 타고 다닌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다. 우선 장애인 콜택시 탑승이 제한되어 있어 오로지
지하철이나 저상버스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그중에도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게 될 텐데,
전동휠체어보다 전동스쿠터가 이동의 제약이 더 많다. 일단 부피가 크기 때문에 공간이 비좁은
엘리베이터 탑승이 매우 어렵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엘리베이터를 규격에 맞게 설치하였다고
말하지만, 실제 휠체어 이용자에게 공간의 규격화는 숫자 나열에 불과하다.
나 역시 현재 타고 있는 전동휠체어가 특수휠체어라서 회전 반경이 넓고 부피도 꽤 나가는
편이라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엘리베이터 입구가 좁은 경우에는
양옆으로 부딪힐까 봐 마음을 졸이며 간신히 타거나, 안에 들어갈 공간 자체가 좁을 때는
난데없이 공간 설계사가 되어 머릿속에서 어떻게 탈 것인가에 대해 계산하며 휠체어를 쑤셔
넣는다. 이처럼 비장애인들은 엘리베이터 설치만 되면 장애인 이동권이 전부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 엘리베이터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밀치고 새치기하고 호통치고
이번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고인이 되신 분은 CCTV상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지나쳐서 에스컬레이터에 타는 모습이 찍혔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사실 휠체어 사용자에게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흔히 비장애인들이 만원 지하철 탈 때 표현하는
‘지옥철’이라 부를만한 공간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서 일어나는 일만 적어도 책 두세
권은 거뜬히 쓸 수 있을 정도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줄은 해당 역사에 에스컬레이터가 없거나, 환승 구간이 복잡한 경우 혹은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게 더 빠를수록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역사 내 엘리베이터 이동이 편한
구조일수록 비장애/노인 분들의 탑승을 향한 열망은 치열하다.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달려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은 쉽게 목격되며, 전동휠체어가
앞에 사람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내놓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새치기하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건 일상이다.
이 치열한 엘리베이터 쟁탈전에 차마 끼어들 수 없는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게 된다.
치열한 탑승 경쟁에 동참하려면 싸움꾼으로 변신해서 나도 좀 타겠노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한다. 가끔 이 장면을 못 견뎌서 나와 동행하던 사람이 “전동휠체어 사용자부터
태우자”고 하면 “당신이 뭔데 왜 나서나”며 나를 가운데 놓고 시비가 붙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은 늘 일촉즉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보글보글 끓는 양은 냄비
같은 곳이다.
머리가 새하얀 어르신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휠체어 탄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우리가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
어느 날 양방향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환승역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줄은
줄어들지 않고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끼어드는 사람만 늘어나고 있었다. 그날 컨디션만
괜찮았더라면 싸워가며 앞으로 갔을 텐데 그럴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서 할 수 없이 역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공익근무요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공익근무요원이 와서
줄을 정리하며 나를 우선 탑승하게 해 주었다. 휠체어 사용자인 나는 오로지 엘리베이터만
탑승이 가능한데, 바로 앞에 휠체어 사용자가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끼어들기 하는
비장애인들 틈에서 어떠한 울분을 느꼈다. 만약 그 역에 차단봉이 없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더라면 나 또한 “까짓꺼 엘리베이터 안 타고 만다!”라고 외치며 눈앞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이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만 따지며 이 정도면 살 만하지 않냐고 말한다.
사실 단순히 엘리베이터 설치율만 데이터로 보면 휠체어 사용자들이 서울 시내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다닐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마치 94%의 설치율이 시민들의 장애인권 의식
수준과 비례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설치율 94%가 무색할 만큼 장애인의 이동시간은 비장애인에 비해 여전히
두 배 이상 걸린다. 그리고 장애인을 향한 혐오의 시선은 우리에게 온몸으로 뚫고 들어와 암흑
같은 일상을 마주하게 만들며 우리가 투쟁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세상은 문명화된 물질적인 사회로 발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애인의 이동권은, 삶은,
현실은 아직도 비문명화 시대에 머물러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구호를 외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